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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음이 위험한 이유

    어리석음이 혼자만의 일에 그친다면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그들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인정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리석은 사람끼리 집단화하는 것이다. 그런 집단은 반드시 사회에서 암적 요소가 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현자들은 어리석음의 폐해를 지적해 왔다.

    어리석음에 대한 현자들의 통찰

    부처는 2,500여 년 전에 이미 어리석음이 인간에게 가장 큰 독소라고 설파했다. 탐진치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일컫는다. 탐진치가 지혜를 어둡게 하고 악의 근원이 되는 독소라 하여 삼독이라고도 부른다. 탐진치에서 가장 해로운 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탐내고 분노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예수도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는 말을 통해 어리석음의 전염성과 위험을 경고했다.

    20세기의 위대한 지성 한나 아렌트는 어리석음을 낳는 무사유가 바로 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논증했다.

    최근에는 뇌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뇌는 쓸수록 향상되고 쓰지 않는 영역은 퇴화한다. 대표적인 예가 멍게다. 어린 멍게는 뇌가 있어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된 곳에 자리를 잡은 멍게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멍게는 뇌를 소화해 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배우고 사유하는 사람의 뇌는 점점 더 활성화된다. 반대로 배우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사람의 뇌는 배우고 사유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한다. 점점 더 어리석어 지면서 결국 고정 관념만 남게 된다. 그렇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이 신념처럼 굳어진 상태에 붙인 이름이 바로 무지렁이 꼰대다. 줄여서 무지 꼰대.

    어리석음의 대표 사례

    배우고 사유하지 않으면 위험

    여기에서 주제는 환경 분석에 배움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살짝 옆길로 새버린 느낌도 든다. 어쨌든 내가 전할 메시지는 배우고 사유하지 못하면 누구나 무지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고를 전하려면 적합한 사례가 필요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무지 꼰대의 사례에 딱 어울린다. 정치 블로그가 아니어서 살짝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무지 이만한 사례를 찾을 수 없으니, 그들의 상태를 추론해 보자.

    나는 그들에게 화가 날 때는 있어도 미워하지는 않는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천지삐까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딱 정치 이야기만 빼면…

    무지하고 비겁하고 비열한 기계적 중립

    기계적 중립 상징 이미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질서가 있다. 시대적으로 합의된 질서는 민주주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 것이다.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바로 헌법이다.

    내란과 탄핵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가 쌓아온 질서를 파괴하려는 현행범과 지키려는 사람의 주장은 기계적 중립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다.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는 법과 원칙을 적용할 문제다. 처벌이나 손가락질의 대상이지 결코 기계적 중립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다. 어쭙잖은 양비론을 펼치는 자들도 많다. 개인이라면 무지한 것이고, 언론이라면 비열한 짓이다. 비겁한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다.